사도행전 19장 말씀을 보면 에베소에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부흥의 한 복판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죽었던 심령이 다시 살아나게 되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유대인의 회당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9장부터는 회당 뿐 아니라 이방인의 장소에 들어가서 두란노 서원을 세우고 그곳에서 강론을 했습니다.
* 놀라운 부흥이 일어날 때
1.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 심겨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밭이 옥토밭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마음을 잘 지키고 말씀을 따라 나가면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잘 떨어져야 하고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부흥의 기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말씀을 잘 새겨야 합니다.
[행19:10]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이 2년의 기간 동안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세상 복음이 아닌 천국에 소망을 두는 천국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행19:9] ‘떠나’ (헬)아포스타스, 예수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떠나 예수를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떠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의 교제는 중요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실제적으로 우리 삶에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세상을 살아갈 동안 우리는 우리의 생각, 경험이 아닌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을 지키고 마음에 하나님 말씀이 심겨지도록 해야 합니다.
두란노 서원은 사도 바울의 소유가 아닌 다른 사람의 건물이었습니다. 주인은 오전 중에 일을 했고, 사도 바울에게는 오전 12시에서 4시까지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사람들이 더위 때문에 낮 잠 자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적으로 볼 때 제일 불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선포되자 모이기 시작했고 하나님은 강력한 부흥을 주셨습니다.
가장 좋지 않은 시간, 여건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말씀을 듣고자 하면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구원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지키지 못한 자는 잘될 수가 없습니다.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쉬는 시간, 잠자는 시간에 사도 바울은 다섯 시간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에 열정을 가지십시오.
[행19:10] 사람들은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가감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진정한 부흥이 오기 전에는 성경 말씀이 선포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삶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놀라운 치유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고후2:17] 하나님 말씀만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묵상해야 합니다.
2. 마귀의 방해의 역사도 있습니다.
부흥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1) 마음이 굳어집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순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굳어지는 것은 강퍅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2)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비방합니다.
[행19:11] 하나님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을 통해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에 주의하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손’ (히) 야드 : 능력, 권세를 의미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손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제적이고 운동력이 있고 우리의 골수까지 찔러 쪼갭니다.
바울이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은 권능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행19:12] 하나님은 축귀 사역도 하게 하셨습니다.
[행19:13] ‘명하노라’ -> (헬) 호르키조 : ‘애원하다’는 의미. 원어는 명령어가 아닙니다.
마술하는 유대인들은 예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귀신을 쫓는 것은 ‘호르키조’가 아닙니다. 사도들의 축귀 사역은 (헬) ‘에피타소’, ‘파랑겔로’로서 귀신을 꾸짖어 쫓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위의 연약한 자들에게 능력있는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위기에 당면할 때 우리는 위기가 위장된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위기를 통해 우리는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행19:17]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됩니다.
3. 말씀이 흥왕하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행19:20]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면 회개, 자복, 성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행19:18] 자복하고 행한 일을 고하게 됩니다.
빛을 비출 때 어둠이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자 마술 책들을 다 태웠습니다. 즉 한 도시가 달라졌습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타협하지 않고 생명 걸고 복음을 전할 때 한 도시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만을 의지하며 나가십시오.